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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투표할 수 있나 — “지방선거”에 한정된 권리, 그리고 우리가 따져야 할 기준

“중국인이 한국에서 투표한다”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불안해진다. 국가 간 갈등이 커지고, 정보전과 여론전이 일상화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외국인은 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에 투표할 수 없다. 외국인에게 투표권이 인정되는 건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 선거(지방선거)이며, 그마저도 영주권(F-5 등)을 취득한 뒤 3년이 경과하고 해당 지자체에 등록된 만 18세 이상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지방선거만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열어두었나, 지금도 그 기준이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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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지는 “지역 주민자치”였다

이 제도는 “국정 방향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라, 쓰레기 처리·교육 환경·교통·지역 개발처럼 생활 행정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세금과 생활로 지역을 함께 꾸리는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정치적 참여를 허용하자는 논리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 많다.

요약하면 “국가의 주권 판단”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운영”의 문제로 본 것이다.

2) 그러나 지금은 ‘상호주의’와 ‘영향 가능성’이 핵심 쟁점이 됐다

문제는 현실이다.

  • 어떤 나라들은 자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동일한 수준의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만 열어두는 게 맞냐”는 상호주의 논쟁이 생긴다.

  • 또 외국인 유권자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지방선거의 박빙 구조와 결합되어 체감상 영향력이 커 보이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이 지점은 제도 설계가 “원래 의도한 규모와 환경”이 지금과 달라졌는지 점검하게 만든다.

다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공산국가 출신이면 무조건 당의 지령대로 투표한다” 같은 문장은 분노는 시원하게 대변할지 몰라도, 증명하기 어렵고 반박도 쉽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글 전체가 “혐오·단정”으로 읽히는 순간, 정작 논쟁의 본질(제도 설계의 타당성)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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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요구해야 할 건 ‘국적 비난’이 아니라 ‘제도 기준’이다

논쟁은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선택지들이 있다.

  • 상호주의 원칙 도입: 상대국이 한국인에게 같은 권리를 주는지에 따라 투표권 부여 여부/범위를 조정한다.

  • 거주 요건 강화: 현행 3년이 충분한지, 5년·10년 등으로 조정할지 사회적 합의를 만든다. (실제로 요건을 늘리자는 논의가 기사·정치권에서 반복된다.)

  • 대상 선거 범위 재점검: 지방선거 전면 부여가 맞는지, 혹은 기초/광역 등 범위를 세분화할지.

  • 투명성·관리 강화: 선거제도를 흔드는 외부 개입(불법 선거운동·허위정보 유통 등)을 국적과 무관하게 강하게 차단한다.

이렇게 정리하면 논점은 명확해진다.

“한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지역참정권 제도를 어떤 조건으로 운영할 것인가.”

누군가를 ‘중국인이니까’라는 이유로 단정하는 순간, 논쟁은 정책이 아니라 감정 싸움이 되고 만다. 반대로 제도의 기준을 촘촘히 세우면, 국적과 상관없이 우리 시스템의 방어력이 올라간다.

“왜 가능하냐”보다 “어떤 조건이 합리적이냐”로 싸워야 한다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는 이미 법에 들어와 있는 제도다.

이제 필요한 건 “분노의 방향”이 아니라 “제도 개선의 방향”이다. 상호주의, 거주 요건, 선거 범위, 불법 개입 차단 같은 측정 가능한 기준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도 ‘눈치’가 아니라 ‘원칙’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